'끝내 사과 없이' 전두환 사망…'친구' 노태우 떠난 지 28일만(종합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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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사과 없이' 전두환 사망…'친구' 노태우 떠난 지 28일만(종합2보)
  • 디지털뉴스팀
  • 승인 2021.11.2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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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90)가 9일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한 뒤 법원을 퇴장하고 있다. 2021.8.9/뉴스1 © News1 정다움 기자


(서울=뉴스1) 이호승 기자,강수련 기자 =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난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향년 90세.

'친구'이자 후임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28일만에 같은 길을 떠났다. 이날은 그가 1988년 11월 23일 대통령 재임 기간 과오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아내 이순자씨와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간 지 꼭 33년 되는 날이기도 하다.

12·12 군사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 과오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은 채 결국 세상을 등졌다.

지난달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당시와는 다르게 그의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정치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을 중심으로 애도보다는 비난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장례 절차도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국가장이 아니라 가족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이 오전 8시55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9시12분쯤 쓰러진 사람이 전 전 대통령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며 전 전 대통령은 발견 당시 심정지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을 앓아왔다.

1931년 경남 합천군에서 출생한 고인은 1951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해 한국전쟁에 생도로 참전했다.

1955년 사관학교 졸업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벌어지자 육사 생도를 동원해 군부 혁명 지지를 끌어내고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으로 영전했다. 이때 조직된 사조직이 하나회다.

1979년 박 전 대통령 피살 직후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뒤 스스로 중장, 대장으로 진급하고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군을 장악한 뒤 1980년 5·17 내란을 일으켜 헌정을 중단하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해 국정을 장악했다.

5·17 쿠데타에 항의해 일어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유혈진압은 1950년 6·25 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정치적 비극으로 평가받는다.

1980년 9월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한 뒤 제11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직에 올랐고,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통과시킨 후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1981년 2월 제5공화국을 출범했다.

임기 말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가 거세지자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지만, 오히려 6월 항쟁을 불러왔다. 그러자 당시 여당 대선 후보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한 뒤 퇴임했다.

1995년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기소 돼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 등으로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대선 이후 사면됐다.

고인은 2017년 회고록 출간으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을 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가리켜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30일 전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난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향년 90세.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7년 중앙재해대책본부를 시찰하는 모습.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2021.11.23/뉴스1

 

 


삼청교육대로 대표되는 철권 통치와 민주주의의 파괴라는 과오가 압도적인 고인이지만 재임 기간 경제 성과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이뤄냈다는 점에서다.

재임 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80년 1714.1달러에서 1988년 4754.5 달러로 2.8배로 늘었고, 만성적 무역적자도 흑자 구조로 바뀌었다.

고인은 전직 국가원수 예우를 받아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를 수는 있지만,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날 서대문구 연희동 전 전 대통ㄹ령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전 전 대통령의 장례는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족장으로 치를 것이고 (유해는) 화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국립묘지 안장은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민 전 비서관은 "유언은 '북녘땅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고 싶다'고 했다"며 "전방고지 장지를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화장해서 연희동에 모시다가 장지가 결정되면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반응은 온도차가 있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전두환씨는 명백하게 확인된 것처럼 내란 학살 사건 주범"이라며 "이 중대 범죄 행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참으로 아쉽게 생각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고용진 민주당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자연인으로서 고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지만 대통령을 지낸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헌정질서를 유린한 군사 쿠데타 범죄자 전두환씨가 역사적 심판과 사법적 심판이 끝나기도 전에 사망했다"며 "오늘 전씨의 죽음은 죽음조차 유죄"라고 비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인간적으로는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는 안타깝다"면서도 "많은 국민적 비난을 받았던 엄청난 사건의 주역으로 그 점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삼가 조의를 표하고 유족에게 위로말씀을 드린다"며 "(조문은) 준비 일정을 보고 전직 대통령이니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따로 조문할 계획이 없다"며 "당을 대표해 조화는 보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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