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 칼럼] "공부 못해서 못 와놓고?" 엘리트 교육, 지금도 최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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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광진 칼럼] "공부 못해서 못 와놓고?" 엘리트 교육, 지금도 최선일까
  • 성관진 대전교육연구소장
  • 승인 2021.04.23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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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장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학교에서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면 그것은 시험성적의 위력일 것이다. 학교생활의 모든 것이 교과성적을 높이기 위한 활동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교에서 주먹깨나 쓴다는 거친 녀석들도 피해가는 아이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반에서 성적이 일·이등하는 우등생들이었다. 아무리 드세도 학교와 교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친구를 감히 손찌검하지 못했다.

1970년대와 80년대까지 예순 명에 가까운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가르쳐야 하는 학교 현실에서는 공부 잘하는 몇몇 아이들은 상급학교 진학에서 학교를 빛내줄 우량아들이었다. 학교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입시 성적이 높은 유명한 학교를 몇 명이 들어가느냐였다.

따라서 특별방이라 하여 성적이 좋은 일부 아이들을 따로 추려서 학교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학업 성적이 특출한 몇몇은 학교에서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정기적인 시험이 끝나면 그 결과를 복도에 붙여, 전교 일등부터 상위권에 들어간 학생 이름과 성적과 같이 전체 학생들에게 공개되었다.

또 이들 성적 최상위자 학생들은 수도 서울의 소위 입시명문대를 가서 학교의 위상을 한껏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학교의 자랑이자 동네의 자랑이어서 웬만한 인간적인 허물도 묻히게 마련이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형성된 엘리트 집단은 과거 급제로 유지됐던 조선시대 양반계급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들 엘리트들은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계급으로서 명과 암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대체로 그들 다수는 체제에 순응하며 일신의 출세과 영달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얼핏 정의로워 보이는 조범석 검사(곽도원 역)가 조폭 두목을 위해 로비에 나선 최익현(최민식 역)을 두들겨 패는 장면이 있다. 함께 식사를 하던 중 화장실에서 만나 어깨를 주무르며 아첨을 하는 최익현을 마구 두들겨 패며 하는 말이다.

"분위기 맞춰졌더니 감히 어디 검사 어깨에 손대고 지랄이야. 개새끼!"

"어이 최익현, 너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가 본데. 나는 네가 깡패인지 아닌지 관심 없어. 내가 깡패라고 하면 깡패인거야."

이 장면은 어디 감히 최고 엘리트인 검사와 같이 놀려고 하다니,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노후에 들어선 주인공 최익현이 자신이 길러낸 검사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영화이지만 엘리트들의 자만을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본다.

검사야말로 학교교육이 낳은 엘리트 중이 엘리트이다. 그들은 마음먹은 대로 수사하고 범죄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소리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검찰개혁 추진 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자신의 조직에 절대 충성한다. 정의의 기준이 조직으로 선배들과 후배들이 어울려 자신들의 이해에 단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조직의 힘이 곧 자신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엘리트들에게는 조직의 안위가 정의의 잣대이다. 성적이 지상 목표인 곳에서 그들은 모든 노력을 다해 그 목표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결과의 정점에서 자신이 속한 권력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이 정의라는 것을 배웠다. 이것이 성적지상주의가 낳은 엘리트들이 갖는 공통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가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는 가운데, 직원들의 망언이 회자되었다. LH직원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는 반성보다는 비판에 대한 비난의 글들이 난무했다. 그런 망언 가운데 "공부 못해서 못 와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 극혐(극히 혐오스러움)"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성적 중심의 교육이 낳은 엘리트 집단이 보여주는 일그러진 초상화가 아닐 수 없다. 수십 년째 이어온 입시 성적지상주의가 낳은 엘리트들에게는 학교에서 공동체 의식에 바탕한 도덕성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성적보다는 인간 중심으로 학교 교육이 바뀌어야 할 때이다. 이제부터라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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